불완전판매로 징역 9년?…前 하나은행원에 중형 선고된 까닭은

입력 2023-12-25 12:00   수정 2023-12-25 22:54


투자자들을 속이고 펀드를 1000억원 넘게 판매해 징역 9년에 처해진 전 하나은행 은행원이 펀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뒷돈을 챙겨 중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현행법상 펀드 불완전판매보다 직무 관련 금품 수수를 더 무겁게 처벌해서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명재권)는 지난 19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과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수재·사기),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모 씨(50)에게 징역 9년에 벌금 2억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5775만원을 명령했다.

신 씨는 2017년 5월 말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하나은행 IPS부(구 투자상품부)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모펀드 상품 출시와 딜소싱 업무를 담당했다.
'징역 9년' 어떻게 나왔나 살펴보니
업계에선 신 씨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된 사실이 알려지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불완전판매로 이 정도 수준의 중형이 나온 사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앞서 라임 펀드를 불완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신증권 전 반포 WM센터장 장모 씨가 대표적이다. 당시 검찰은 징역 10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지만 2020년 12월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신 씨의 형량엔 펀드 불완전판매보다 ‘금품 수수’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신 씨에게 문제 된 펀드는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와 영국 부동산 브릿지론 펀드 총 두 가지다. 재판부는 신 씨가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를 판매하면서 중요 사항을 누락하거나 속이고 △영국 브릿지론 펀드를 판매하게 해준 대가로 5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의 불완전 판매에 대해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특경법 위반(사기), 사기 혐의 등 총 세 가지다. 신 씨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특경법과 형법상 각각 3년 이상과 10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보다 영국 브릿지론 펀드가 최종 형량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신 씨가 영국 브릿지론 펀드 관련 금품을 챙긴 데 대해선 특경법 위반(수재) 혐의를 적용했다. 특경법은 금융회사 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의 돈을 수수한 경우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두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경합범’인 신 씨의 경우 가장 무거운 처벌을 규정한 특경법상 수재(징역 7년 이상)를 기준으로 최종 형량의 범위를 계산하게 된다. 형법과 양형기준에 따라 징역 7년~24년 9개월의 범위에서 재판부는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이민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재판부가 징역 9년을 선고한 데에는 하한선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수재 혐의가 없었다면 징역 1~2년 정도에 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량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보다 영국 브릿지론 펀드와 관련된 혐의가 더 중요했다는 평가다.
法. “‘잘 지내자’는 취지로 5000만원 건넸을 리 없다”
영국 브릿지론 펀드는 영국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는 현지 대부업체에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을 투자하는 펀드다. 2020년 현지 대부업체에 부실 문제가 터지면서 만기가 지연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신 씨가 영국 브릿지론 펀드를 판매하게 해준 대가로 중개업자인 최모 씨에게 돈을 요구해 현금 5775만원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신 씨는 2018년 6월 최 씨로부터 펀드를 소개받고 직접 영국을 찾아 현지 운용사 경영진과 펀드 구조 등을 논의한 다음 국내 자산운용사들을 상대로 펀드 설정을 부탁했다. 신 씨가 나서면서 하나은행은 최 씨를 통해 브릿지론 펀드를 약 240억원 판매할 수 있었고, 최 씨도 펀드 수수료로 상당한 돈을 챙길 수 있었다.

신 씨 측 변호인은 “하나은행에서 퇴직한 뒤에도 협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 씨가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며 “신 씨가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최 씨에게 먼저 돈을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씨 측은 “신 씨가 ‘내가 자산운용사도 직접 찾아주고 투자심의위원회도 설득해서 이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며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돈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신 씨는 최 씨가 벌어들인 브릿지론 펀드 중개 수수료의 25%를 달라고 하는 등 구체적인 수준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 씨가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없었던 상황에서 단지 협업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막연한 이유로 최 씨가 5000만원이 넘는 거액을 지급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기상환' PB도 속이고 자산운용사도 속였다
재판부는 신 씨가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판매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도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6개월간 1100억원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초대박’ 상품이었다. 이 상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투자자들에게 1년 남짓한 기간 뒤에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보장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판결문엔 ‘조기상환’이라는 단어가 총 148번 나온다. 그만큼 조기상환은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의 핵심이었다.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과 함께 "약 1년 1개월 후에 반드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믿고 펀드에 투자했다.

문제는 사실과 달랐다는 점이다. 펀드의 기초자산엔 24개월 또는 36개월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락업기간’이 설정돼 있었다. 게다가 조기상환도 투자자나 하나은행이 아닌, TRS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가 결정할 사항이었지만 신 씨는 신금투와 그와 관련된 약정을 맺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신 씨는 PB들에게 반드시 조기상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 씨는 2019년 3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하나은행 PB들에게 조기상환은 조건 없이 상환 가능하다는 내용의 상품제안서를 보냈다. 상품제안서엔 “조기상환 옵션을 통한 실질 만기 단축”이 ‘투자 포인트’로 표시된 경우도 있었다.

신 씨는 각 자산운용사로부터 “신금투로부터 펀드 조기상환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문의가 오자 “조기상환은 신금투에서 무조건 해준다”라거나 “신금투가 1년 차에 상환하는 것으로 합의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검찰·변호인 모두 항소장 제출
신 씨 측은 1심에 불복해 지난 21일 서울남부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튿날 검찰도 법원에 항소장을 내면서 양측은 2심서 다시 맞붙을 예정이다.

법원이 영국 브릿지론 펀드 판매와 관련해 무죄로 판단한 부분도 재차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검찰은 신 씨가 영국 브릿지론 펀드를 판매하게 해준 대가 등으로 직장 동료를 통해 최 씨로부터 약 44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검찰은 신 씨가 영국 브릿지론 펀드의 현지 운용사가 거느린 싱가포르 소재 자회사와 2019년 4월 고용계약을 맺고 급여와 자녀 학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나은행에서 영국 브릿지론 펀드 출시를 담당하지 않았으면 해당 회사가 이 같은 금전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직무와 관련된 대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논리에 따르면 신 씨가 하나은행 재직 중에 받은 자녀의 학비는 물론 퇴사 이후 싱가포르 자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받는 모든 급여가 수재 대상이 될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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